달항아리 백자대호 백자호 백자문호
조선시대 백자호와 관련한 예전에 읽었던 재미난 정보 올려봅니다😆
우리가 “달항아리”라 부르는 도자기는
하얀 빛깔을 지닌 큰 항아리라 해서
원래 “백자대호” 또는 “백자문호”라고 하지요.
‘그런데 왜 / 언제부터 “달항아리”로 더 많이 불리는걸까요?’⁉️
.
궁금함에 찾아봤더니,,,
영국의 미술평론가겸 도예가였던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가
193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조선백자에 반해 몇 점을 영국으로 가져갔는데,
그 중 백자대호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가 영국에서 백자대호의 매력을 알리고 소개하는 과정에
달항아리(Moon Jar)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흥미로운 글을 접했어요_
.
20세기 후반부터 조선백자가 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Moon Jar”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널리 퍼졌고
이후 국내에서도 “달항아리”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거라는데,
한국에서부터 퍼져나간게 아닌 해외에서 외국인들에 의해
“달항아리”라는 용어가 시작되었다는게 좀 흥미롭게 느껴지더군요_
.
그래서 좀 더 찾아봤는데 버나드 리치 이 외에도
김환기 화백이나 고유섭 선생님이 달항아리를 처음 언급했다는
카더라 글들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분들이 달항아리라 직접적인 언급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관련 학술 사료들은 찾지를 못했어요.
.
그래서 이런 주장에 대한 사실 기록이 있는지를 찾아보다가
"달항아리"는 명칭은
최순우 선생님이 1963년에 쓴 신문 칼럼을 통해 처음 사용되었다는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
다들 "백자대호"가 "달항아리"라는 용어로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참고해보길 바래요.

[번역 글]
1950년대부터 김환기는 종종 둥근 백자 항아리를 푸른 보름달과 함께 그렸다.
그는 항아리를 달에 비유한 시와 수필도 여러 편 남겼다.
“김환기는 해방 이후 도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백자 항아리는 일제강점기 당시 ‘마루쓰보(丸壺)’라 불리던 기형으로,
일본어로 ‘마루(丸)’는 둥글다는 뜻이고 ‘쓰보(壺)’는 항아리를 뜻합니다.
그는 이 항아리에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고미술상 홍기대
그러나 ‘달항아리’라는 명칭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김환기의 저작이 아닌, 1963년 최순우의 신문 칼럼이었다.
최순우는 칼럼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백발 노인이 찾아와 유백색의 달항아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참 며느릿감 같구먼.’
그 표정은 무척 흐뭇해 보였다.”
칼럼 말미에서 최순우는 친구 김환기의 항아리에 대한 애정을 언급하며,
두 사람이 ‘달항아리’라는 명칭을 정립하는 데 있어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칼럼 이후에도 ‘달항아리’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수십 년 동안 이와 같은 백자 항아리를 지칭하는 공식 명칭은 ‘백자대호(白磁大壺)’, 즉 ‘큰 백자 항아리’였으며,
혹은 단순히 ‘백자 항아리’라고 불렸다.
기자는 1950년 이전에 발행된 신문에서 ‘달항아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사용되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 용어는 1980년대까지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1990년대에도 드물게 언급되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야 그 사용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명칭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백자 항아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2000년대는 달항아리를 둘러싼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2000년,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은 한국과 협력하여 한국실(Korea Foundation Gallery)을 개관했고,
이 전시실의 중심 유물로 18세기 백자대호를 ‘달항아리(moon jar)’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이 낭만적인 명칭은 해당 유물이 대영박물관의 인기 전시품으로 떠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과 같은 유럽 작가 및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또 하나의 전환점은 2005년, 서울의 국립고궁박물관이 개관하면서 ‘백자 달항아리’를 개막 전시로 내세운 것이다.
이는 국립박물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전시에 ‘달항아리’라는 용어를 공식 사용한 사례였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은 이 전시의 팸플릿 서문에서 “달항아리는 한국미(美)의 정수”라고 썼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문화재청은 대한민국 보물 및 국보로 지정된 백자대호 7점의 명칭을 공식적으로 ‘백자 달항아리’로 변경했다.
이로써 달항아리는 한국미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관련 기사 주소 The branding behind Korea's ultimate form of beauty ]

결국 여러 자료를 종합해보면 김환기·최순우를 중심으로 이름이 자리 잡은 흐름은 보이는데,
‘이 사람이 최초 명명자이다’라고 확정할 만한 정확한 사료는 아직 못 찾겠더라고요.
혹시 관련 근거 자료 알고 계신 분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달항아리 백자대호 백자호 백자문호
조선시대 백자호와 관련한 예전에 읽었던 재미난 정보 올려봅니다😆
우리가 “달항아리”라 부르는 도자기는
하얀 빛깔을 지닌 큰 항아리라 해서
원래 “백자대호” 또는 “백자문호”라고 하지요.
‘그런데 왜 / 언제부터 “달항아리”로 더 많이 불리는걸까요?’⁉️
.
궁금함에 찾아봤더니,,,
영국의 미술평론가겸 도예가였던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가
193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조선백자에 반해 몇 점을 영국으로 가져갔는데,
그 중 백자대호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가 영국에서 백자대호의 매력을 알리고 소개하는 과정에
달항아리(Moon Jar)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흥미로운 글을 접했어요_
.
20세기 후반부터 조선백자가 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Moon Jar”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널리 퍼졌고
이후 국내에서도 “달항아리”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거라는데,
한국에서부터 퍼져나간게 아닌 해외에서 외국인들에 의해
“달항아리”라는 용어가 시작되었다는게 좀 흥미롭게 느껴지더군요_
.
그래서 좀 더 찾아봤는데 버나드 리치 이 외에도
김환기 화백이나 고유섭 선생님이 달항아리를 처음 언급했다는
카더라 글들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분들이 달항아리라 직접적인 언급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관련 학술 사료들은 찾지를 못했어요.
.
그래서 이런 주장에 대한 사실 기록이 있는지를 찾아보다가
"달항아리"는 명칭은
최순우 선생님이 1963년에 쓴 신문 칼럼을 통해 처음 사용되었다는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
다들 "백자대호"가 "달항아리"라는 용어로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참고해보길 바래요.
[번역 글]
1950년대부터 김환기는 종종 둥근 백자 항아리를 푸른 보름달과 함께 그렸다.
그는 항아리를 달에 비유한 시와 수필도 여러 편 남겼다.
“김환기는 해방 이후 도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백자 항아리는 일제강점기 당시 ‘마루쓰보(丸壺)’라 불리던 기형으로,
일본어로 ‘마루(丸)’는 둥글다는 뜻이고 ‘쓰보(壺)’는 항아리를 뜻합니다.
그는 이 항아리에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고미술상 홍기대
그러나 ‘달항아리’라는 명칭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김환기의 저작이 아닌, 1963년 최순우의 신문 칼럼이었다.
최순우는 칼럼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백발 노인이 찾아와 유백색의 달항아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참 며느릿감 같구먼.’
그 표정은 무척 흐뭇해 보였다.”
칼럼 말미에서 최순우는 친구 김환기의 항아리에 대한 애정을 언급하며,
두 사람이 ‘달항아리’라는 명칭을 정립하는 데 있어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칼럼 이후에도 ‘달항아리’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수십 년 동안 이와 같은 백자 항아리를 지칭하는 공식 명칭은 ‘백자대호(白磁大壺)’, 즉 ‘큰 백자 항아리’였으며,
혹은 단순히 ‘백자 항아리’라고 불렸다.
기자는 1950년 이전에 발행된 신문에서 ‘달항아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사용되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 용어는 1980년대까지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1990년대에도 드물게 언급되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야 그 사용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명칭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백자 항아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2000년대는 달항아리를 둘러싼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2000년,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은 한국과 협력하여 한국실(Korea Foundation Gallery)을 개관했고,
이 전시실의 중심 유물로 18세기 백자대호를 ‘달항아리(moon jar)’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이 낭만적인 명칭은 해당 유물이 대영박물관의 인기 전시품으로 떠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과 같은 유럽 작가 및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또 하나의 전환점은 2005년, 서울의 국립고궁박물관이 개관하면서 ‘백자 달항아리’를 개막 전시로 내세운 것이다.
이는 국립박물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전시에 ‘달항아리’라는 용어를 공식 사용한 사례였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은 이 전시의 팸플릿 서문에서 “달항아리는 한국미(美)의 정수”라고 썼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문화재청은 대한민국 보물 및 국보로 지정된 백자대호 7점의 명칭을 공식적으로 ‘백자 달항아리’로 변경했다.
이로써 달항아리는 한국미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관련 기사 주소 The branding behind Korea's ultimate form of beauty ]
결국 여러 자료를 종합해보면 김환기·최순우를 중심으로 이름이 자리 잡은 흐름은 보이는데,
‘이 사람이 최초 명명자이다’라고 확정할 만한 정확한 사료는 아직 못 찾겠더라고요.
혹시 관련 근거 자료 알고 계신 분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